이민 온지 얼마 되지않아 세탁소를 인수한지 이제 5년. 황 모씨는 쌈지돈을 종잣돈 삼아 세칭 10년 ‘노트페이’ 즉 10년짜리 약속어음을 끼고 겨우 세탁소를 인수할 수 있었지만, 부부가 함께 밤낮으로 부지런히 일해 5년만에 남은 노트페이를 모두 갚아버릴 수 있었다. 가게를 인수하며 얻은 빚을 모두 청산해 이제 세탁소가 온전히 황씨 부부의 사업체가 되었다는 기쁨에 신나게 일을 하던 어느 날, 한 시중은행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다. 전 주인에게 모두 갚았던 바로 그 어음의 결재를 요구하는 서류가 날아 온 것이다. 은행측은 이제 해당 어음이 법적으로 자신들에게 양도되었으므로 앞으로 남은 나머지 5년간의 월 페이먼트는 은행에게 매달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 주인에게 이미 어음 잔액을 모두 갚았고 지불한 수표의 사본도 보관하고 있던 황씨는 자신만만했기에 은행의 통지를 묵살했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얼마 후, 은행 측의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월 페이먼트가 아닌 5년이나 남은 어음 잔액 전부를 그것도 고리의 징벌이자, 즉 ‘Default Rate’으로 계산해서 일시불로 결재하지 않으면 담보권이 설정된 세탁소 자산을 대상으로 법적인 조치에 나서겠다는 편지가 배달되었다. 황씨는 이제 다급해진 마음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니 전 주인이 세탁소를 팔고 난 후 다른 사업을 위해 은행에 해당 어음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자산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렸는데, 그만 사업이 망해 파산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한인들 사이에 흔히 ‘노트페이’라고 부르는 약속어음, 즉 ‘Promissory Note’는 법률용어로 ‘Negotiable Instrument’라고 하는 유통증권의 한 종류이다. 유통증권은 지폐나 수표 같이 거래 당사자들끼리 간단히 주고 받는 ‘교부’나 뒷면에 서명을 하는 ‘배서’와 같은 쉬운 절차만으로 쉽게 권리를 양도할 수 있는 유가증권을 칭한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비록 어음을 발행한 사람(어음을 끼고 세탁소를 인수한 황씨)이 그 어음을 양도한 사람(어음을 받고 세탁소를 넘긴 전 주인)을 상대로 항변할 수 있는 부분(전 주인에게 어음 잔액을 모두 갚았다는 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어음을 선의로 취득한 사람(황씨와 전 주인 간의 거래내용을 모르고 어음을 취득한 은행)은 아무런 법적 하자 없이 어음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례에 언급된 황씨의 첫번째 실수는 일시불로 어음의 잔액을 모두 갚을 당시 해당 어음의 원본을 회수하지 않은 것이다. 말한 것처럼 어음은 유통증권이기 때문에 그 원본을 가지고 어음 발행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양도가 가능하다. 세칭 말하는 ‘어음할인’ 같은 거래행위도 어음이 유통증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황씨의 두번째 실수는 은행의 통지를 무시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은행에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설명을 하고, 우선 은행 측에 월 피이먼트를 해나가면서 전 주인을 상대로 적절한 법적인 조치를 병행했다면, 최소한 은행 측 변호사가 요구하는 고리의 징벌적 이자율과 남은 잔액의 일시불 요구 등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1/01/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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